'아방가르드'에 해당되는 글 5

  1. 2011.08.01 전위예술가의 오 슈퍼맨 (11)
  2. 2011.04.03 디지털 미디어 아트의 미래변화 (7)
  3. 2010.06.27 시간의 방정식 25 - 뉴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무빙이미지 - [ 마지막회 ] (6)
  4. 2010.06.04 젊은 초상의 죽음 6. 1. 2010 - 아방가르드 디자이너 토비어스 웡 [ Tobias Wong ] (4)
  5. 2010.05.09 규제된 우연성과 불확정성 음악 [ 현대음악 ] - 존 케이지 [ John Cage ] (4)

전위예술가의 오 슈퍼맨

Laurie Anderson


 1981년 영국 팝 차트 2위를 차지한 노래 [ 오 슈퍼맨 O Superman ]은 뉴욕 다운타운의 전위예술가들 사이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 오 슈퍼맨 ]은 시카고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퍼포먼스 작가인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 1947-)이 만든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 미국 United States- 1980 ]의 삽입곡이다. 앤더슨은 197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19세기 작곡가 줄 마스네(Jule Massenet)의 오페라  [ 르시드 Le Cid ]를 관람했는데, 극 중 로드리고의 아리아 [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O Souverain ]를 노래했던 찰스 홀랜드의 열연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오 슈퍼맨 - 1981년
특히 가사에 등장하는 “O Souverain, O Judge, O Father”의 부분은 [ 오 슈퍼맨 ]의 가사로 변용되었다. 마스네의 오페라가 전지전능한 신의 귄위를 찬미했다면 앤더슨은 20세기 후반, 가족간의 대화가 응답기의 메시지로 대체되고 정보화 사회에서 개인이 감시의 대상이 되는 미국사회를 묘사했다. 필립 글라스[ Phillip Glass ]의 미니멀리즘을 연상시키는 도입부의“하-하-하-하-하” 사운드와 함께 현대의 힘과 권위의 상징들--슈퍼맨, 판사, 부모--를 내세우며 고도로 기계화된 문명과 경찰국가로서의 미국의 단면을 비판한 것이었다. [ 오 슈퍼맨 ] NEA(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에서 지원받은 500달러를 가지고 1980년 뉴욕의 영세 레코드사인 밥 조지(Bob George)의110 Records 레이블로 딱 1000장이 만들어졌다. 45rpm의 싱글 레코드로 앞면에는 [ 오 슈퍼맨 ]이,

Walk The Dog


뒷면에는 [ 워크 더 독 Walk the Dog ]이 수록된 형태였다. 이듬해 앤더슨은 런던으로부터 느닷없는 전화를 받는다. 그날 중으로2만장의 레코드를 보내달라는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 곧이어 같은 주말까지 2만장을 추가로 보내달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당황한 앤더슨은 “어, 제가 전화 드리지요”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이렇듯 [ 오 슈퍼맨 ]의 대중적 인기는 앤더슨 자신에게도 뜻밖이었다. 대체 앤더슨이 노래가 어떻게 상업적인 대중음악 순위에 오르게 된 것일까? 정확히 어떻게 이 노래가 런던에서 유행을 타게 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학생들 사이에서 노래에 등장하는 음성변조기(vocoder)를 사용한 자동응답기의 녹음이 유행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 오 슈퍼맨 ]의 성공은 미디어재벌인 워너 브러더스 사와의 전속계약으로 이어졌다. 8장의 레코드를 내는 조건이었다. 때마침 시작된 MTV의 파급력은 81년 뮤직비디오로 제작된 [ 오 슈퍼맨 ]을 미국의 대중들에게도 각인시켰다.

미국공연 실황장면

앤 더슨이 상업 레코드사와의 계약에 처음부터 동의했던 것은 아니었다. 앤더슨은 “ 팝 음악이란 대체로 12살짜리 애들에게 맞는 수준으로 만들어진 것 ”  이라는 아방가르드 특유의 냉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에서의 폭발적인 인기는 작가가 진지하게 ‘ 대중 ’을 고려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이후 앤더슨의 퍼포먼스의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아티스트로서 내가 하는 일 중 하나는 관객과 직접 만나는일이다. 이는 반드시 즉각적이어야 한다” 는 그녀의 말은 앤더슨의 작품이 퍼포먼스의 현장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대중음악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이런 앤더슨의 변화에 대한 전위미술계의 반응은 차가웠다. 80년대 초반에만 해도 전위작가가 대기업에서 상업적인 판매를 한다는 것은 아방가르드를 “팔아먹는” 변절자 취급을 당할 일이었다. 한편 대형 레코드 레이블과의 계약으로 얻어진 경제적 여유는 앤더슨의 퍼포먼스 무대의 대형화를 가져왔다. 여러 디지털 기기들과 컴퓨터, 조명, 백 코러스, 최고의 세션 맨들로 이루어진 연주를 가능케 했다.

United States Live - 1980

앤더슨은 공연과 레코드, 뮤직 비디오 뿐 아니라 영화, CD-Rom 제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넓혀갔다. 이런 앤더슨의 행보는 ‘미술가’라는 명칭을 무색하게 한다. 그렇다면 미술과 팝 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앤더슨의 작업은 오늘날의 현대미술에 무엇을 시사하는지를 가늠해 보는것도 좋을듯 하다. 

글 이지은 -  팝과 아트사이 중에서 일부 발췌


Language is a Virus


Laurie Anderson's Hom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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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곽윤경 2011.10.09 21:04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무려 제가 태어나기 전의 인물입니다!
    가사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음악도 매우 독특한 것 같네요.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표현하는 그녀는
    아티스트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물론 디자이너는 상업미술을 한다지만 나름의 철학과 소신이 있기에
    아티스트적인 디자이너가 될 수 있지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 이승한 2011.12.19 01:38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이 것을 보면서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새로운 시도란 사람들에게 새로움으로 관심을 가지게 하며 그것이 대중화 되면서 더 발전을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람은 항상 똑같은 것을 하기 보단 남보다 먼저 앞서서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것이 더 재미 있고 의미 있는 것일고 생각합니다.

  3. 곽희철 2011.12.19 10:47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재미있는 영상입니다. 제가 평소에 생각하는 노래라는 것과는 또 다른 형태를 지닌 노래인 것 같습니다.
    영상과 글을 읽다보니 노래나 팝아트 등 무언가의 하나로 정의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노래나 팝아트나 결국에는 모두가 궁극적으로 하나의 목표로 향해가지 않나 생각 됩니다.

  4. here_hero 2011.12.19 13:23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헉.. 공연장 모습이 그야말로 충격입니다. 글 내용처럼 '미술가'라는 말이 무색한 인물임에 틀림없는 듯 합니다.
    유명한 곡들 말고도 더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5. 허다경 2012.12.05 08:4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컴퓨터와 다양한 기기들을 이용한 음악이 아주 오래 전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영상의 앞부분을 봤을 때는 이것이 음악인지, 그냥 말하는 것인지 헷갈렸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 사람의 목소리를 변조하고 또 다양한 기기들의 소리에 얼마나 신기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르게 들렸습니다. 이런 음악을 만드신 앤더슨이란분이 존경스럽습니다.

  6. 권준한 2012.12.05 22:21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신디사이저의 근원이겠죠? 요즘 듣는 기계음과는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음악에서도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지만 퍼포먼스를 볼때 이게 과연 미술가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놀랍습니다. 아티스트란 말에는 음악아티스트 ,미술아티스트로 굳이 나누지않은 것을 보며 또 수업을 들으며 느끼고 드는 생각은 재활과 디자인 아트 등 궁극적인 목적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7. 이유정 2012.12.06 12:29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신디사이저라는 것에 대해 듣고 보게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요즘 흔한 기계음 음악들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놀라움은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예술가가 노래를 만들었을때 두가지 분야에서 지식을 가졌다면 새롭고 놀라웃것들이 창조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 인물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것이 배울점이라고 생각합니다.

  8. 곽병기 2012.12.09 11:5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신디사이저에 대해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 사람의 공연하는 모습을 볼때 처음에는 이게 무엇인지 몰랐는데
    후반부에 볼때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이 되었다

  9. 곽나경 2013.05.03 21:05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미술과 새로운형태의 팝음악을 넘나드는 아티스트로서 정말 멋진거같습니다.노래도 신기하네요

  10. 이하늘 2016.12.03 23:47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과제에 지친 마음에 신디사이저라는 것을 접하게되고 동영상을 보며 잠시의 휴식을 느낄 수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11. 송연정 2016.12.10 01:02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신디자이너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대중과의 소통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치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아티스트와 디자이너가 합쳐진 모습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미디어 아트의 미래변화

현재의 미디어 아트는 -
창작 개념에서
전통적인 창작 방법을 조금씩 잃어가는 듯 합니다. 이것은 인터넷 이후의 변화와도 연관되는 현상으로 교육을 받지 않은 비전문가들도 창작주체로서 개인의 취미영역을 넘어서는 전문적인 작업으로서 창작물을 생산할 수 있으며, 이들의 실질적인 소비층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창작주체가 꼭 현재 대학교의 미술교육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그리고’, ‘만들고’의 개념이 아닌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응용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론이나 컨셉을 통해 작업의 내용이 채워지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디지털라이즈는 작품의 탈물질화를 촉진시키고 그 결과 어떤 물건으로써의 작품 개념 대신 아이디어나 정보, 리소스와 같은 기획적 측면이 더욱 중요시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더불어 관객들의 인터랙티브한 개입을 통해 끊임없이 반응하면서 생장, 증식하는 프로세스적인 측면이 더욱 부각될 것입니다.  정보 통신의 이론가인 로이 에스콧(Roy Ascott)은 " 미디어 아트는 개인과 단체, 지역 사이의 창조적인 연결성(connectivity)을 계획하고 만들어나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창조적 연결성은 개인과 단체, 지역들이 보다 응집력 있고 명확한 관계성을 맺도록 할 뿐만 아니라 태도나 가치, 목표에도 영향을 미치고 문화의 삶 속에서 다양한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오늘날의 예술은 네트워크, 과정, 참여, 인터렉션으로 이루어진 예술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컴퓨터를 능가하는 다음 세대의 새로운 미디어로서 모이스트 미디어(moist media)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Roy Ascott는 컴퓨터의 인공적, 디지털적인 영역이 유기체의 실존 세계와 접목시켜 인공적인 영역과 자연의 영역을 연결하고 의식과 물질 세계 사이의 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미디어 아트의 변화를 이끌게 되었던 최초의 대표적인 전시중 하나가 1968년 런던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ICA)에서 열린 "Cybernetic Serendipity" 입니다. “cybernetics”라는 용어는 1948 Norbert Wiener의 책 “Cybernetics: communication and control in animal and machine”에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serendipity”는 1754년 Horace Walpole에 의해 사용된 용어로 우연히 좋은 것들을 발견해내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 전시를 돌이켜 보면 그 당시의 예술에 대한 아방가르드적 도전과 지금부터 미래 미디어 예술과 산업이 어떻게 변화될지 조금 예측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Press Release for the exhibit curated by Jasia Reichardt at the ICA London August 2nd to October 20th, 1968: «Cybernetics - derives from the Greek «kybernetes» meaning «steersman»; our word «governor» comes from the Latin version of the same word. The term cybernetics was first used by Norbert Wiener around 1948. In 1948 his book «Cybernetics» was subtitled «communication and control in animal and machine.» The term today refers to systems of communication and control in complex electronic devices like computers, which have very definite similarities with the processes of communication and control in the human nervous system. A cybernetic device responds to stimulus from outside and in turn affects external environment, like a thermostat which responds to the coldness of a room by switching on the heating and thereby altering the temperature. This process is called feedback. Exhibits in the show are either produced with a cybernetic device (computer) or are cybernetic devices in themselves. They react to something in the environment, either human or machine, and in response produce either sound, light or movement. Serendipity – was coined by Horace Walpole in 1754. There was a legend about three princes of Serendip (old name for Ceylon) who used to travel throughout the world and whatever was their aim or whatever they looked for, they always found something very much better. Walpole used the term serendipity to describe the faculty of making happy chance discoveries. Through the use of cybernetic devides to make graphics, film and poems, as well as other randomising machines which interactc with the spectator, many happy discoveries were made. Hence the title of this show.» London 1968 Statement by the curator, Jasia Reichardt: «One of the journals dealing with the Computer and the Arts in the mid-sixties, was Computers and the Humanities. In September 1967, Leslie Mezei of the University of Toronto, opened his article on «Computers and the Visual Arts» in the September issue, as follows: «Although there is much interest in applying the computer to various areas of the visual arts, few real accomplishments have been recorded so far. Two of the causes for this lack of progress are technical difficulty of processing two-dimensional images and the complexity and expense of the equipment and the software. Still the current explosive growth in computer graphics and automatic picture processing technology are likely to have dramatic effects in this area in the next few years.» The development of picture processing technology took longer than Mezei had anticipated, partly because both the hardware and the software continued to be expensive. He also pointed out that most of the pictures in existence in 1967 were produced mainly as a hobby and he discussed the work of Michael Noll, Charles Csuri, Jack Citron, Frieder Nake, Georg Nees, and H.P. Paterson. All these names are familiar to us today as the pioneers of computer art history. Mezei himself too was a computer artist and produced series of images using maple leaf design and other national Canadian themes. Most of the computer art in 1967 was made with mechanical computer plotters, on CRT displays with a light pen or from scanned photographs. Mathematical equations that produced curves, lines or dots, and techniques to introduce randomness, all played their part in those early pictures. Art made with these techniques was instantaneously recognisable as having been produced either by mechanical means or with a program. It didn't actually look as if it had been done by hand. Then, and even now, most art made with the computer carries an indelible computer signature. The possibility of computer poetry and art was first mentioned in 1949. By the beginning of the 1950s it was a topic of conversation at universities and scientific establishments, and by the time computer graphics arrived on the scene, the artists were scientists, engineers, architects. Computer graphics were exhibited for the first time in 1965 in Germany and in America. 1965 was also the year when plans were laid for a show that later came to be called «Cybernetic Serendipity,» and presented at the ICA in London in 1968. It was the first exhibition to attempt to demonstrate all aspects of computer-aided creative activity: art, music, poetry, dance, sculpture, animation. The principal idea was to examine the role of cybernetics in contemporary arts. The exhibition included robots, poetry, music and painting machines, as well as all sorts of works where chance was an important ingredient. It was an intellectual exercise that became a spectacular exhibition in the summer of 1968.

Jasia Reichardt London 2005


Gordon Pask - The Colloquy of Mobiles / 1968


Nam June Paik - Electronic Art II / 1968


McLuhan Caged (in Electronic Art II) -

'Marshall McLuhan's distorted face in Paik's 'McLuhan Caged' videotape (1967)'


Wolf Vostell - Electronic Dé-coll/age, Happening Room / 1968



더 많은 참여작가와 작품들을 아래의 사이트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http://www.medienkunstnetz.de/search/?qt=Cybernetic+Serendipity+%281968%29#w

레프 마노비치는 오늘날의 뉴미디어는 1920년대의 아방가르드들이 시도한 뉴미디어와는 달리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새로운 것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 1920년대의 새로운 미디어, 즉, 사진, 필름, 새로운 프린팅 및 건축 기술들은 새로운 형식의 미디어과 새로운 소통방식 [몽타쥬, 콜라쥬, 비친숙화 (defamiliarzation) 등 ] 을 시도했으며, 오늘날의 뉴미디어는 형식적으로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별로 없고 이미 올드 미디어가 된 1920년의 뉴미디어 기술들을 알고리듬으로 공식화하고 소프트웨어로 구현하여 올드 미디어의 창조, 처리, 분배를 매우 효율적으로 만들었다. 즉, 하이퍼미디어, 데이터베이스, 검색엔진, 데이터 마이닝, 영상처리, 시각화, 시뮬레이션 등이 그것이다. 오늘날의 뉴미디어는 올드 미디어를 사용한다는 면에서 메타-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소프트웨어이므로, 소프트웨어야 말로 이 시대의 아방가르드이다. 즉, 새로운 형식 (new forms)은 이미 1920년의 아방가르드가 다 확립했고, 오늘날의 아방가르드는 그렇게 새롭게 본 세상에 대한 축적된 정보를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고 이용하는 것이다. 메타-미디어 사회는 세상을 표현할 새로운 방법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며, 이미 축적된 표현들을 처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골치가 아프다. 시네마가 세상을 새롭게 보는 예술이었다면, 컴퓨터는 이미 있는 미디어를 처리하고 분배하는데 관심이 있다. " 라고 합니다.
 또 그는 " 1980년 초기부터 분명하게 드러난 일이지만, 문화는 더 이상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올드 미디어 콘텐츠, 아티스틱 스타일과 형식을 끊임없이 리사이클링하고 인용하고 있으며, 이것은 미디어로 가득찬 사회의 새로운 국제적 스타일이다. " 라고 하면서, 이러한 경향이 일반 문화의 경향인지 아니면 예술계에도 적용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마노비치는 아주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려는 생각을 포기하고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들을 혼합하는 작품을 만든 작가 라우센버그를 예로 든 것으로 봐서 예술계도 이런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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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타나선장 2011.04.03 23:5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처음보고 이해하기에는 저의 지식이 짧다고 느껴집니다.

  2. 김예휘 2011.04.06 10:29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미디어 아트에 대해 아는것이 별로 없었고 접할 기회도 많지 않아서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요기 글을 보고 조금이나마 알았는거 같애요
    미래 디자인 예술과 산업이 어떻게 변화되지 궁금해져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보고 갈께요 ^^

  3. 정현정 2011.04.09 01:47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처음 그림을 접했을 때는 저것이 과연 무엇인지 이해하질 못했는데, 개념적 설명을 읽고 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로이 애스콧이 말한 모이스트 미디어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예술은 커뮤니케이션이고 함께해야 가능하며 반응이 있어야 한다. 즉 혼자하는 예술이 다가 아니라, 함께 한다는 개념이 앞으로의 예술 방향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제품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의 대화 속에 진정한 제품이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인공적인것과 자연적인것의 연결이란 것이 결국은 자연에서 인간이 온 것 처럼, 모든 것의 근본은 자연이고 자연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인공적인 물건을 창조했지만 그 근본은 경험, 내가 살아온 환경, 자연. 그것을 토대로 합니다. 경험에서 디자인이 나오는 것처럼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보진 않습니다. 내가 겪어온 경험에서 디자인이 나온다고 봅니다. 로이 애스콧이 말하는 모이스트미디어의 개념이란 이런 내가 살아온 환경, 자연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인공적인 개념과 함께 같이 가야하는 앞으로의 방향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그런 개념을 인지하고 앞으로의 디자인 방향을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함께 반응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혼자만의 대화가 아니니까요.

    • 안진석 ironyfunny 2011.04.09 02:44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쉽지않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잘 이해를 하고 있는것 같아 한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느듯 나의 속 살이 보여지는듯 해서 한편으로 부끄럽게 느껴지는것은 채우지못한 부분이 많음을 느껴서 일까요~ 모이스트 미디어의 실행 지침과 방법등을 다음편에 넣을까 합니다... just for you~

  4. 정현정 2011.04.09 02:23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이렇게 교수님이 블로그에 올리신 글, 정보, 지식 등을 읽고 댓글을 다는 행위도 모이스트미디어의 한 부분? 맥락을 같이 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반응 이런 모든 것들이 말입니다^^

  5. Online Listings 2012.01.23 19:43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我的编码器是试图说服我从PHP。NET。我一直不喜欢,因为费用的想法。但他的tryiong没有少。我一直在使用WordPress的一些网站上大约一年,我切换到另一个平台。我听到有关blogengine.net的好东西。有没有办法,我可以将其导入我所有的WordPress的内容吗?任何形式的帮助将是非常感谢!

  6. 허윤 2012.12.17 00:55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어릴때 서울에서 전시회를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바로 우리나라 미디어아트 백남준 선생님이다. 어린기억에 tv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와 신기하다 이런 느낌이였다면 지금 봤을때는 조금 다르게 느꼈다. 신기함 보단 되려 그 작품 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모습들을 고민 해본다. 무궁하게 발전하고 있는 미디어에 대해서 잘못 된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과연 얼마나 발전 해야지 사람들은 만족할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미디어의 끝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해본다. 끝은 없다라고 사람들은 흔히 이야기 할 것이다. 그말에 대해서 나는 동의 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오염이나 폐기처분에 대해서 생각하는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조금 불편하고, 조금 뒤쳐지게 살더라도, 큰 미디어의 발전이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불편함을 느끼더래도 뒤로 후퇴함을 하는 것은 어떤가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끝으로 항상 느끼는 거다. 미디어 아트의 전시나 글을 보면 접하면 접할수록 멀게 느껴진다. 비전무가도 뭔가 편리하고 이해하기 더 도움 되는 전시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의 방정식 25 - 뉴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무빙이미지 - [ 마지막회 ]


현상과 경향


뉴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은 무빙이미지의 표현스타일의 전환, 커뮤니케이션의 전환,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한 테크놀로지와의 융합현상 등을 보이고 있다. 이런 시대적 트렌드는 다양한 분야와 요소가 융합과 복합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러한 미디어의 궁극적 목표는 보다 나은 인간의 삶과 문화를 형성하고 문화적 창조에 관객이 직접 체험하여 스스로 통제와 참여의 개념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 아방가르드 미디어 아트스트의 다양한 융.복합 사례를 통한 이해와 함께 그들이 커뮤니케이션 하고자하는 것들은 많은영감을 얻어내기에 좋은 모델이 될 수 도 있을것이다.


Messa di Voce

뉴욕 파슨스 스쿨에서 함께 활동해온 Golan Levin과 Zack Lieberman은 2003년 오디오 비주얼 퍼로먼스 Messa di Voce를 공동 제작했다. Messa di Voce는 이태리어로 ‘ Placing the voice ’란 뜻으로 두 보컬리스트의 목소리에 따라 커스텀 비주얼라제이션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실시간 그래픽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Speech, Shout, Song에 반응하는 리얼타입 인터액티브 비주얼리제이션이며 소리로 드로잉하는 유희적 요소를 작품으로 승화 시킨 사례이다. 현제 Golan Levin은 카네기 멜론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Ben Fry
Processing 개발자이며 MIT 미디어 랩의 교수이기도 한 Ben Fry는 실험적인 Video Experiments를 발표했는데 이는 영화 - FARGO를 Ascii TEXT로 맵핑한 후 이미지의 어두운 부분을 소문자로 밝은 부분을 대문자로 처리하여 보여준다. Stupendous 소프트웨어의 Ascii & Art 소프트웨어는 이와 유사한 효과를 가진 상용 plug in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개의 결과물은 같은 기법을 사용하지만 매우 다른 느낌을 만들어 내고 있다.




Bix
오스트리아의 그라쯔 미술관 외벽에는 Bix Communicative Display Skin 이라고 명명된 930여 개의 특수 형광등이 설치되어있다. 이 작품은 피터 국이 코린 훌리에와 함께 현실화 시킨 건축물로 건축과 디자인계의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는 반영구적인 설치물로 초당 20 프레임의 이미지와 영상을 디스플레이 할 수 있다. 모니터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해상도이지만 실제로 보여지는 가시영역은 가로 56m 세로 24m = 약 1,334 m2 로 지금까지 비교할 수 없는 큰 스케일 중 하나이다.




Mine Control
Zach Simpson은 샌프란시스코 소재의 Mine Control 을 이끌어 가고 있는 아티스트로 이 분야에서는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의 작품들은 2002년 SIGGRAPH에 초대되었으며 2005년에는 Adam Frank와 함께 뉴욕 Eyebeam Residence Artist로 활동하기도 했다. SHADOW라는 Adam Frank와의 공동작품에서 Zach는 C++를 사용하여 자품을 제작하기도 하고 게임적인 요소를 작품에 많이 첨가 하기도 한다. 참여하는 아트는 Zach가 추구하는 방향이며 그의 작품 대부분이 체험형으로서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을 매년 선보이고 있다.




Daniel Shiffman
Daniel은 많은 이미지 프로세싱 작업으로 각광을 받는 아티스트들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예술적 감성보다는 프로그래밍 기술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지만 카메라를 이용한 픽셀 아트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Scott Snibbe
Scott Snibbe는 실험적인 영화 제작자로 훈련을 시작하면서 그것들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구조적인 관계로 이미지를 얽어내면서 지각과 정신에 충격을 준다. 그의 예술을‘ 구경꾼 사이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이라고 명명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관객 또한 상호작용이라는 영역 안에서 예술적 체험을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의 예술은 이미지의 움직임에 기조를 두고 있다. 아주 복잡한 아이디어를 통하여 창조된 작품이라 할지라도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에서는 미니멀적이다. 직접 작품 안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이면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울러 그의 작품은 추상 영화처럼 실험적이기도 하다. 디지털이라는 도구가 그렇기도 하지만, 셀룰로이드 필름을 긁어낸 것처럼 이미지를 겹치고 찢어내는 표현 기법은 일정한 미술 전통을 넘어선 것들이다.





The Khronos Projector
2005년 일본 미디어 예술제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Alvaro Cassinelli [ 우루과이 ] 의 작품이다.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스크린을 통하여 영상 시간의 실태를 만들수 있고, 미리 촬영해 둔 것을 손으로 변화시킴으로써 그 시각적 스토리를 재현 할 수도 있다.




Grass
Barbarian Group의 Grass는 자동차 런칭에 45’x 12’후사 투영 스크린을 사용했다. 그의 작품은 상호 영상을 4대의 DLP 영사기에 의해 이음새가 없이 보여 주면서 소음에 반응하는 사람의 움직임을 sensing하는 첨단 영상 설치물이다.




Imaginary Forces
1996년 Kyle Cooper와 Chip Houghton, Piter Frankfurt는 Imaginary Forces를 설립하여 기존의 무빙이미지를 디지털 환경속의 모션 그래픽으로 새롭게 창출하였다. 특히 방송, 영화시장에서 성공적인 작품을 보여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켰으며 뉴욕 타임스쿼어 건물 외관에 24시간 영상 시각화 작업으로 도시환경에서 Urban Design이라는 영역으로 확장 승화를 시키기도 하였다.


Camille Utterback
Camille Utterback은 뉴욕에서 활동 중인 프로그래머이며 아티스트이다.인터액트브 설치물을 통해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 물리적 세계, 상징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작업들을 하여왔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데이터와 관객의 움직임에 관한 관계로서 컴퓨터 알고리즘과 인간의 제스처 사이에서 생겨나는 일종의 ‘ 춤 ’ 의 표현에 관한 작업들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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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데이빗 크로우 지음, 박영원 옮김, 기호학으로 읽는 시각디자인, 안그라픽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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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홍미희, 카일 쿠퍼의 영화 타이틀 디자인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첨단영상 대학원, 2006
_ 이현숙, 영상디자인에서의 Visual Identity 활성화를 위한 모션그래픽 표현 연구, 홍익대학교 산업대학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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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김정남, 국어 형용사의 의미구조, 한국어 의미학 8, 2001
_ 백성은. 신성윤. 이양원, 영상의 한국적 감성 형용사 추출 및 감성 콘텐츠 프레임 워크 설계, 한국 컴퓨터 정보학회, 제15권, 2007
_ 홍정수·오희숙, 음악미학, 음악세계,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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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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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백성은. 신성윤. 이양원, 영상의 한국적 감성 형용사 추출 및 감성 콘텐츠 프레임 워크 설계, 한국 컴퓨터 정보학회, 제15권, 2007


이상의 내용은  아이러니퍼니 미디어랩의 발행 저서 시간의 방정식의 내용을 - 25회에 걸쳐 게제 한 것입니다.

많은 부분 새로운 내용들로 어려움이 있겠으나 천천히 읽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질의 및 응답은 댓글과 박명록을 통하여 전하도록 하겠읍니다...   [ 아이러니퍼니 미디어 디자인 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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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운 2010.09.16 09:48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저번학기때 그래프를 색다른 방법으로 써보라고 하신 말씀에 도대체 어떻게 해야 색다를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 제 고민을 해결(?) 해주는 포스팅인거같아요~^^*

  2. 타나선장 2010.09.29 22:59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아, 센서를 이용한 인터랙티브 정말 해보고 싶어요. 커스텀 비주얼리제이션 소프트웨어는 어떤것이 있나요?
    사운드센씽을 쓴다고만 들었지, 실제로 어떤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어떻게 프로그래밍하는지 궁금하네요 ^^
    역시, C언어를 접해야 되는것이지요?

  3. 최영윤 2011.03.16 11:39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첨에는 고민하다가 일단은 모두 읽어보자는 식으로 글들을 보았습니다. 전문서적이나 디자인사전등을 구입하여 공부를 많이 해야되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확실히 이해될때까지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4. 박성민 2011.04.06 11:13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새로운 문화 창조에 작가의 머리와 가슴 만큼 중요한 것이 다양한 기술의 발전이라는게 느껴집니다.

  5. 한성수 2011.05.25 12:4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내면세계를 표출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욕구는 이때까지 수많은 방식으로 거듭 반복되고 새롭게 발전되며
    발산되어 왔으며 정보혁명으로부터 시작되어온 미디어 매체의 발달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만 현재의 무빙이미지는 '과거에 없었던 예술의 발전'이라기 보다는 '과거와 조금 다른 예술의
    발전'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6. 윤수진 2012.06.14 01:13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미디어를 이용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한 것 같은데., 아직 이해가 되지않습니다.
    계속 보고 있긴 한데. 조금 어렵지 않나 싶어요 그만큼 제가 아직 아는 부분이 미약한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알아보고 다시 읽으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될 것 같아요

젊은 초상의 죽음 6. 1. 2010 - 아방가르드 디자이너 토비어스 웡 [ Tobias Wong ]




슬픈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젊은 디자이너 토비어스 웡이 6월1일 자살을 하였다는  뉴욕타임스의 내용이었다.
그의 작품을 바라보면 일반적인 디자이너라는 생각보다는 사상적 혁신을 도모하는 젊은 아방가르드 인이라 보는편이 훨씬 나을듯 싶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끊임없는 사색과 도전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감히 건너짚어 보기도 하였다. 35살이면 가장 의식적 표현이 왕성할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은으로 디자인한 알약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꼈으니 말이다.. 은색알약이 똥으로 나올때 비로소 알약은 빛을 바랜다고 하니... 모든 디자인이나 우리가 만드는것 모두가 어떻게 그 빛을 찾을 수 있을지 은유가 참으로 적절함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필립스탁의 의자를 다시 디자인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레이디 메이디의 사상적 철학을 레이디 디자인이라는 형식으로 진부한 필립스탁의 의자를 자기만의 의자램프로 만들어 자기의 창작으로 만들어 버리는 의식이 대담하다.  마지막 한가지, 아파드 입구 바닥에 자갈을 깔아 놓음으로 써 불편함 보다는 진중함을 전하려고 노력한 디자인적 형식들이 그의 죽음을 안따깝게 한다..





디자인 메거진
코어77에서 아릭 첸이라는 그의 친구가 토비에게 보낸 송사를 실었다. - 다다와 플럭서스의 영향아래 전유를 통해 작가성에 대한 질문을 가지며, 욕망과 부조리에 거울을 갖다대면서 디자인과 예술, 시시한 것과 귀중한 것에 대한 위계를 뒤집었다. 파라컨셉추얼 [ paraconceptual : 초월적 개념 ]이라는 부르는 형식으로 작업하였으며,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디자인의 모든 것 - 제조, 심리적 공명, 미학적 기준, 배급방식, 기원에 대한 애착, 맥락의 부여, 프레젠테이션 방식 등을 재평가 하였다.

Through his work, Wong helped bring forth much of what is now taken for granted in contemporary culture. Influenced by Dada and, especially, Fluxus, he questioned authorship through appropriation; held a mirror to our desires and absurdities; upended the hierarchy between design and art, and the precious and the banal; and helped redefine collaboration and curation as creative practices. Working within what he termed a "paraconceptual" framework, Wong prompted a reevaluation of everything we thought we knew about design: its production, its psychological resonance, its aesthetic criteria, its means of distribution, its attachment to provenance, its contextualization and its manner of presentation. Wong was a keen observer, an original mind, a brilliant prankster, and an unerring friend.  -  Aric Chen

토비어스 웡의 작품은
2004년의 젊은 디자이너로 MoMA, Cooper-Hewitt, Colette, Prada, Wallpaper* magazine (2004), Brooklyn Museum of Art (2006) 에 소개되고 있다.

다시한번 고인이 된 토비어스 웡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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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다운 2010.06.06 12:0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김영탁 2010.06.07 05:2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명복을 빕니다.

  3. 김윤혜 2010.06.07 05:4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단순히 그림으로만 보아서 어떠한 작품인지 인지하기 어려워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권총모양으로 만든 책이라든가, 그외의 의자 조명도 있었고 제가 생각지도 못한 디자인을 많이 보았습니다.
    순금알약은 교수님의 설명을 보았는데도 이해가 가지않아 자료를 찾아보았는데도
    제가 이해한것이 맞는지 헷갈리네요.. ㅠ
    알약을 순금으로 바꾼 디자인인가요 ?

  4. 김성준 2013.06.08 22:3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누가 죽었나 싶어서 눌려보았다. 아 이런사람도 있구나 하며 내리는데
    알약사진이 시선을 끌어 쭉 읽어보았다. 35살의 젊은 나이에 이렇게 되서 아쉽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젊은 초상의 죽음 6. 1. 2010 - 아방가르드 디자이너 토비어스 웡 [ Tobias Wong ]




슬픈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젊은 디자이너 토비어스 웡이 6월1일 자살을 하였다는  뉴욕타임스의 내용이었다.
그의 작품을 바라보면 일반적인 디자이너라는 생각보다는 사상적 혁신을 도모하는 젊은 아방가르드 인이라 보는편이 훨씬 나을듯 싶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끊임없는 사색과 도전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감히 건너짚어 보기도 하였다. 35살이면 가장 의식적 표현이 왕성할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은으로 디자인한 알약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꼈으니 말이다.. 은색알약이 똥으로 나올때 비로소 알약은 빛을 바랜다고 하니... 모든 디자인이나 우리가 만드는것 모두가 어떻게 그 빛을 찾을 수 있을지 은유가 참으로 적절함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필립스탁의 의자를 다시 디자인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레이디 메이디의 사상적 철학을 레이디 디자인이라는 형식으로 진부한 필립스탁의 의자를 자기만의 의자램프로 만들어 자기의 창작으로 만들어 버리는 의식이 대담하다.  마지막 한가지, 아파드 입구 바닥에 자갈을 깔아 놓음으로 써 불편함 보다는 진중함을 전하려고 노력한 디자인적 형식들이 그의 죽음을 안따깝게 한다..





디자인 메거진
코어77에서 아릭 첸이라는 그의 친구가 토비에게 보낸 송사를 실었다. - 다다와 플럭서스의 영향아래 전유를 통해 작가성에 대한 질문을 가지며, 욕망과 부조리에 거울을 갖다대면서 디자인과 예술, 시시한 것과 귀중한 것에 대한 위계를 뒤집었다. 파라컨셉추얼 [ paraconceptual : 초월적 개념 ]이라는 부르는 형식으로 작업하였으며,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디자인의 모든 것 - 제조, 심리적 공명, 미학적 기준, 배급방식, 기원에 대한 애착, 맥락의 부여, 프레젠테이션 방식 등을 재평가 하였다.

Through his work, Wong helped bring forth much of what is now taken for granted in contemporary culture. Influenced by Dada and, especially, Fluxus, he questioned authorship through appropriation; held a mirror to our desires and absurdities; upended the hierarchy between design and art, and the precious and the banal; and helped redefine collaboration and curation as creative practices. Working within what he termed a "paraconceptual" framework, Wong prompted a reevaluation of everything we thought we knew about design: its production, its psychological resonance, its aesthetic criteria, its means of distribution, its attachment to provenance, its contextualization and its manner of presentation. Wong was a keen observer, an original mind, a brilliant prankster, and an unerring friend.  -  Aric Chen

토비어스 웡의 작품은
2004년의 젊은 디자이너로 MoMA, Cooper-Hewitt, Colette, Prada, Wallpaper* magazine (2004), Brooklyn Museum of Art (2006) 에 소개되고 있다.

다시한번 고인이 된 토비어스 웡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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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다운 2010.06.06 12:0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김영탁 2010.06.07 05:2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명복을 빕니다.

  3. 김윤혜 2010.06.07 05:4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단순히 그림으로만 보아서 어떠한 작품인지 인지하기 어려워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권총모양으로 만든 책이라든가, 그외의 의자 조명도 있었고 제가 생각지도 못한 디자인을 많이 보았습니다.
    순금알약은 교수님의 설명을 보았는데도 이해가 가지않아 자료를 찾아보았는데도
    제가 이해한것이 맞는지 헷갈리네요.. ㅠ
    알약을 순금으로 바꾼 디자인인가요 ?

  4. 김성준 2013.06.08 22:3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누가 죽었나 싶어서 눌려보았다. 아 이런사람도 있구나 하며 내리는데
    알약사진이 시선을 끌어 쭉 읽어보았다. 35살의 젊은 나이에 이렇게 되서 아쉽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규제된 우연성과 불확정성 음악 [ 현대음악 ] - 존 케이지 [ John Cage ]


스톡하우젠은 유럽 음악에 미친 케이지의 가상적 영향을 평가함에 있어 많은 오류 중의 하나를 제거할 수 있다 . 여러 번에 걸쳐, 스톡하우젠과 뷸레즈와 푸서의 작품에서 이용되었던 ‘규제된 우연성( controlled chance )'이 케이지의 작품에 적용된 것을 보게 된다. 스톡하우젠은 그가 ’통계적’, ‘가변적’ 그리고 ‘다원적’이라고 명명한 형식의 발전이 케이지의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이 1953년 초반에 마이어 에플러( Meyer-Eppler )와의 연구에 의해 음성학과 정보 이론으로 뻗어 나갔다고 보고했다.


삐에르 뷸레즈는 존 케이지에 관한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였다.

“그는 참신하지만 아주 영리하지는 않다. 그의 신선함은 지식의 부재(不在)에서 나왔다.”

전후 전위음악의 두 대표적 작곡가들은 미국 작곡가인 John Milton Cage Jr. ( September 5, 1912 – August 12, 1992 ) 가 그들 자신과 다른 유럽 작곡가들에게 미친 영향의 평가에 대해 후한 편이 아닌 듯하다. 이것이 아량이 모자라서인지, 아니면 미국인이 유럽 음악문화의 우세함에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몹시 두려워서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1949 년 이후 케이지가 잠시 유럽에 모습을 비친 것이 그곳의 많은 작곡가들에게 비교적 심오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논쟁의 여지가 있긴 해도, 이러한 영향은 흔히들 생각하듯 그가 미국에서 가지고 온 음악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아이디어와 작곡 개념과 인물 자체에 더욱 기인한다. 이러한 상황은 작곡개념의 방법론이나 철학적 입장에 대한 논의 자체만으로도 이러한 방법이나 개념에 의해 쓰여진 작품들의 연주만큼이나 새로운 음악의 출현에 중요한 사건일 수 있는 시기에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한 케이지의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미학적 입장이 오랫동안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을 볼 때 그의 창작품의 중요성을 가볍게 볼 수가 없다.



존케이지의 생애 및 음악세계

존 케이지는 로스엔젤레스에서 태어나 로스엔젤레스 고등학교를 1928년 최고 모범생으로 졸업했다. 포모나 대학에서 2년을 보낸 다음 파리에서 얼마간 지냈는데, 그곳은 그에게 예술-특히 시, 회화, 건축과 음악-에 대한 매력을 미국에서보다 더욱 많이 느끼게 했다. 캘리포니아의 몇몇 작곡가들의 진지한 작곡 수업에 대한 권유로 잠시 아놀드 쇤베르크의 지도를 받았는데, 그 때 쇤베르크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막 망명한 상태였다.

항상 피아노에 매력을 느꼈던 케이지는 초기에 피아노곡을 많이 작곡했고 계속적으로 일생 동안의 커리어를 통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피아노를 사용했다. 그에게는 처음부터 음높이를 선택하는 방법이라든지 피아노 소리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이용한 비전통적인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러한 변화는 간단한 약음기를 사용하여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줄 사이에 여러 가지 종류의 물건을 끼워 약간, 혹은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음색을 바꾸는 것을 익혔다. 벨트나 고무, 쇳조각들이 안에 *‘장치된(prepared)'피아노라 고 알려지게 된 것에 쓰였다. 장치된 피아노를 위한 첫 곡들처럼 이 곡도 작은 무용 연구소를 위해 작곡되었다.(케이지는 그 당시 무용 수업을 위한 반주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 이후에도 계속 무용수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존 케이지는 1936년~1938년 시애틀 코니시 스쿨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타악기만으로 된 앙상블을 조직하였고, 시카고의 디자인 학교에서 1년 간 가르친 후 뉴욕으로 옮겨갔다.  1943년부터 콘서트를 열기도 하고 교편을 잡기도 하며 작곡을 계속, 1949년 프리페어드 피아노의 창시를 비롯한 새로운 창조활동을 하여 구겐하임 재단과 국립문예 아카데미로부터 장학금과 상을 받았다.  1951년 음악가와 기술자에 의한 그룹을 결성해 직접 자기(磁氣)테이프로 음악을 창작하는 새로운 수법을 개발, 크리스티안 울프, 얼 브라운, 모톤 펠드만 및 자신의 작품을 창작하였다.  1954 년에는 도나우에싱겐 현대음악제에 참가, 유럽 현대작곡가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케이지는 피아노에 다양한 프레퍼레이션을 줄 수 있는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고안해 내 그 이후로는 많은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활용한 작품을 썼다. 작곡을 하면서 불확정적 요소의 도입, 도형악보의 창안, 콘택트 마이크나 스피커를 이용한 음악세계의 확대 등을 독창성에 넘친 새로운 활동을 선보인다.  케이지는 1945∼46년에 키타 사라브하이(Gita Sarabhai)로부터 동양 철학을, 일본의 스즈키(鈴木大出)로부터 선(禪)을 배움으로써 동양 사상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의 초기 경향은 타악기의 앙상블이나 프리페어드 피아노에 의한 음악의 창시자로서 음악을 악음의 세계에서 해방하고 조음을 포함한 다채로운 음색에 의한 작품과 리듬 구성법에 의한 작품을 쓴 작가로 알려져 왔다.
또 한, 1950년대에 불확정성 음악을 확립하고서, 근대 유럽적 음악에 대한 생각과 결별하고 찬스 오퍼레이션에 의하여 작곡가의 의지나 음의 선택이 될 수 있는 대로 개입되지 않는 방법을 씀으로써 인간 중심의 미의식과는 다른 새로운 예술의 개념을 탄생시킨 작곡가로서 유명하다.

 케이지가 ‘우연’을 음악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부터였다.

우연을 자연의 근원적인 원리로 인식한 그는 예술가들의 작위적인 이기심을 경멸했으며 예술과 우리들이 매일매일 경험할 수 있는 것들 사이에 구별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말은 사람들에게 역설처럼 들렸다.
케이지는 음악이란 소리예술이므로 어떠한 소리도 음악의 재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과거에 사람들이 음악으로 간주하지 않던 소리들을 과감하게 재료로 사용했다. 이는 비 미학적 물질을 사용하여 예술품을 제작함으로써 전통미학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던 뒤샹(미술가)의 행위와 별로 다르지 않다.

소리에는 네 가지 요소들, 즉 음의 고저(pitch), 음색(timbre), 큰 소리(loudness), 지속(duration)이 있으며 오히려 정적(silence)이 유일한 지속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4분 33초〉는 단지 지속만이 있는 작품이다.

오늘날 우연성이나 불확실성은 작곡기법의 하나로서 널리 채용되고 있다.
우 연성의 음악은 모턴 펠드먼(Morton Feldman), 얼 브라운(Earl Brown) 등 미국 새 세대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1954년 10월에 열린 도나우에싱겐 음악제에서 케이지의 음악과 사상이 소개되어 P.불레즈(Pierre Boulez), 카를하인즈 슈토크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등의 작곡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1960년대부터 우연성의 사상은 기보법 개량이나 연주행위를 회복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서양의 음악사유(音樂思惟) 자체의 반성을 불러일으켰다. 연주 도중에 연주자의 행위가 들어가도 하기 때문에 음악이 아닌 해프닝으로 보기도 한다. 케이지의 영향은
독일에서 벌어진 플럭서스(Fluxus) 그룹 예술가들의 해프닝에도 미쳤는데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대부분 케이지의 제자들이었다.
음악은 소리예술이므로 음식을 씹어 먹는 소리나 망치로 두들기는 소리도 악기 소리와 마찬가지로 음악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플럭서스 그룹의 생각은 주변의 소리들을 콜라주하는 케이지의 작곡방법과 다르지 않았다.


우연을 자연적인 형태의 원리로 인식한 그는 예술가들이 형태를 이성적으로 창조하는 것에 반발했고 예술품에서 클라이막스와 단계가 나타나는 것을 배척해 반복을 선호했다. 그는 예술과 인생 사이의 간격을 없애버리기 위해 예술가 자신을 배제하는 방법에 도달했는데 여기에는 자아와 타아의 구별을 흐리게 하는 선불교의 방법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을 알았다. 연 이은 ‘해프닝’과 퍼포먼스로 ‘스타’가 된 케이지는 1954년 한 강연에서 “당신 자신 속에 주위의 에테르(ether)의 카오스와 유사한 것을 가꾸어라: 마음을 해방하고, 정신을 자유롭게 하라”라는 말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테이프를 이용한 전자음향의 실험을 전개하면서 그의 음악은 하나의 거대한 사조를 이루기 시작한다.
비결정성(indeterminism),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라는 단어가 그의 예술과 사상을 지칭하기 위해 동원되었고, 그는 ‘컬트’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최소의 것이 최대의 효과를 낳는다.(minimal is maximal)”라는 명제는 순수음악계와 대중음악계를 막론하고 ‘아방가르드’이고자 하는 모든 뮤지션들의 정언명령이 되었다. 또한 소음(noise)을 포함하여 ‘비음악적 소리’를 음악에 ‘무작위적’(random)으로 도입하려는 시도 역시 케이지에 의해 봇물이 터졌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케이지에 의해 최초로 시도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의 선구자들인 에드가 바레즈(Edgar Varese), 피에르 샤페르(Pierre Schaeffer) 등의 영향력이 순수음악계에 그친 반면, 케이지는 대중음악계를 변화시키는 데에도 무시 못 할 깊은 파장을 미쳤다. 라 몽트 영(La Monte Young), 테디 릴리(Teddy Riley),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 필립 글래스(Phlip Glass) 등은 케이지의 아이디어와 테크닉을 더욱 발전시켜 미니멀리즘 유파를 만들어냈고, 이 들 중 라 몽트 영(La Monte Young)은 존 케일(John Cale)을 통해 1967년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를 낳았으며, 테디 릴리(Teddy Riley)는 이르민 슈미트(Irmin Schmitt)를 통해 1971년 캔(Can)을 낳았다.

현 시점에서 케이지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어느 정도는 ‘정형화’해 있다. 이는 고전음악을 포함한 서양음악 전통의 부정이라는 형식을 취한다. 조성(tonality)으로 대표되는 수직적 원리에 기초한 작곡 방법을 부정했다든가, 음의 고저(pitch) 사이의 정확한 간격을 부정했다든가, 전자 장비를 포함한 각종 비(非)악기 적 도구를 사용하여 악기에 관한 전통적 개념을 부정했다든가 등등…. 하지만 그의 혁신은 음악을 창작하는 과정에 그치지 않고 음악을 수용하는 과정까지 이어진다. 청년기부터 선불교에 영향 받은 그의 음악은 명상적인 상태를 이끌어낸다.

케 이지의 음악과 철학에 대한 권위자인 크리스티안 볼프(Christian Wolf)가 설명하듯 “케이지의 음악은 어디에 도달하는, 진보를 달성하는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도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다. 묵수(acquiescence)를 통해 청자는 지금(now) 속에 산다.” 이리하여 그토록 복잡하고 난해한 현대음악은 마음만 바꾸면 너무나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이 되고, 청자는 무기적(inorganic)이고 불활적(inactive)인 열반 상태에 접어든다.



피아노 작품을 통해 본 작품세계


케이지는 항상 하면 ‘안 되는’ 걸 하는 것을 즐겼다. 피아노와 성악을 위한 The Wonderful Widow of Eighteen Spring(방년 18세 과부 1943)에 선 피아노 뚜껑을 닫고는 피아니스트가 손가락 마디로 악기의 여러 부위를 두드리게 했다. 1948년에 그는 길고 진지한 Suite for Toy Piano(장난감 피아노를 위한 조곡)을 작곡했다. 그러나 1942년부터 1951년까지 케이지 악보의 대부분은 장치된 피아노를 위한 곡이었는데, 그 장치의 정도와 성격은 각 곡의 음악적 요구에 따라 달랐다. 이 같은 장르로 보다 긴 작품 중에는 Amores(사랑 1943)와 Sonatas and Interludes(소나타와 간주곡 1948)가 있으나 또한 Our Spring Will come(우리들의 봄은 오리오 1943), Tossede as It is Untroubled(아무런 문제도 없는 듯이 건배를 1943), Root of an Unfocus(중심 없는 뿌리 1944), A Valentine Out of Season(때늦은 발렌타인 1944), Daughters of the Lonesome Isle(외로운 섬의 딸들 1945), 그리고 Music for Marcel Duchamp(마셀 뒤쌍을 위한 음악 1947) 등의 훌륭한 제목을 가진 십여 개의 짧은 곡들이 있다.

Music for Marcel Duchamp은 약 5분 정도 걸린다. 그것은 가온음자리 표를 가진 하나의 오선체계상에 변함없는 5/4박자로 되어 있다. 전곡에 단지 여덟 개의 음만 사용되었고 모두 다 장치가 되어 있다. 악보에 주의 깊게 설명되어 있는 그 장치는 아주 간단하다. 그 중 일곱 개는 현의 틈 사이를 막는 것으로 장치되어 있고-그것들의 원래 음은 변화되지 않았으나 그들의 음색은 일종의 소리를 죽여 놓는 장치를 한 작은 쇳방울 뭉치 같은 것이 된다.- 여덟 번째 음은 고무조각과 작은 나무빗장으로 막아 놓았는데, 이 빗장은 세 현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에 놓여 있고 이것이 연주되었을 때는 음이 음높이가 없는 나무 조각 같은 소리가 난다. 음악 자체는 매우 간단한데, 짧게는 두 박자 정도 길게는 네 마디 정도의 많은 음형으로 반복되고 있다. 거기에는 정해진 길이의 휴식(쉼표)이 많이 있으나, 어떤 고조되는 느낌이나 발전 혹은 절정의 느낌이 전혀 없다. 또한 대위법적이거나 템포의 변화조차도 없다. 음악이 있을 뿐이고 더 이상의 무엇은 없는 것이다. (그 단순한 반복음형이 주기적인 침묵에 의해 끼어든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 Sonatas and Interludes는 1시간 10분 정도가 소요된다. 피아노의 88음의 반 이상이 다양한 나사와 나무빗장, 콩, 고무조각과 플라스틱으로 장치되어 있다. Music for Marcel Duchamp와는 다르게 장치가 만드는 음높이와 음색과 음향의 과격한 변화 때문에 음악이 실제로는 어떻게 소리가 날지 악보를 보아서는 알 수 없다. 짜임새가 훨씬 복잡하고 리듬과 박자의 형태가 더욱 더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onatas and Interludes는 많은 점에 있어서 이전의 음악(Music for Marcel Duchamp)과 비슷하다. 사실상 그것들은 케이지가 1948년 이전까지 피아노를 위한 소품들과 장치된 피아노를 위해 작업해 왔던 종류의 것들을 결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모든 것이 주의 깊게 기보되어 있고 어떤 기회적인 전개도 개입되어 있지 않다. 거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음색 변화를 사용하여 음과 비음의 요소를 통합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있다. 케이지는 리듬을 배열하는 데 있어 소리 그룹과 침묵기간 사이의 관계에까지 관심을 확대시킨다.
1949 년 초 카네기 리사이틀홀에서 가진 Sonatas and Interludes의 초연이 마로 아제미안(Maro Ajemian)의 연주로 성공을 거두자 영향력 있는 청중들의 관심을 끌게 하였다. 어렵던 재정 형편은 구겐하임 재단과 아메리칸 아카데미와 내셔널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 앤드 레터로부터 받게 된 연구비로 개선되었고 1949년에 다시 유럽에 갈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그는 젊고 외향적인 작곡가 삐에르 뷸레즈를 만났는데, 토론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 두 사람은 즉시 친한 친구가 되었다. 토론의 결과 뷸레즈에게 큰 성과가 생겼다. 뷸레즈보다 13년이나 연상인데다 사교의 폭이 넓었던 케이지는 파리두 출판사를 설득시켜 First Sonata와 Second Sonata를 포함한 뷸레즈의 작품 몇 개를 출판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나중에 뷸레즈의 미국 입국을 도울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이 좋았던 3년 동안 줄곧 연락을 취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인데, 이 기간에 뷸레즈는 그가 작곡가로서 추구하고 있던 것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인간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서서히 표면화되어, 3년 후 그 들 사이엔 피할 수 없는 결별이 왔다. 그러는 동안 이미 동양에 대한 연구에 깊이 젖어 있던 케이지는 동전을 던진다든가 하는 기회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의견을 도출해 내는 해설집인 주역을 접하게 되었다. 어떤 전개를 따름에 있어 그는 ‘장치되지 않은’ 피아노를 위한 Music of Change(변화의 음악 1951)를 위한 작곡법에 주역을 활용했다. 그 결과는 초기의 건반음악 기법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그의 작품 세계에 기회의 사용과 나중에는 불확정성의 전개로 연관되는 전적으로 새로운 시기가 열렸다.
네 권으로 된 Music of Change는 약 45분 가량 소요된다. 연주자에게는 어떤 기회의적용도 결코 허용하지 않으면서- 기보가 전체적으로 상세하게 되어 있다-악보는 기회를 작곡 도구로 사용하는 데 대한 케이지의 새로운 관심이 잘 나타나 있다. 그가 여태까지 보다 훨씬 더 리듬적으로 복잡한 전개를 사용했다는 것은 악보를 그냥 슬쩍만 봐도 명백히 알 수 있다.

이 새로운 관심이 거의 불가피하게 연주자에게 더 많은 ‘열린’기회를 주게 되었다. 그러나 케이지에게 있어서 제일 첫 단계는 그의 작곡법을 다듬는 것이었다. 그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개인의 선택을 무시하는 작곡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자아와 취향을 배제하는 방법을 찾길 원했다.

이어서 나온 Music for Piano(피아노를 위한 음악 1953)라고 불리는 곡에서 음들은 그가 쓰고 있는 종이 위에 있는 흠집의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 장치된 피아노를 위한 31‘57.9864 ̋ for a Pianist(피 아니스트를 위한 31’57. 9864 ̋ 1954)에서는 장치되는 재료와 위치가 상당 부분 피아니스트에게 맡겨져 있고, 다이내믹의 정도와 타건의 종류는 알기 어려운 그래프 방식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입체적 리듬 표기는 연주자에게 상당한 여유를 준다.

Winter Music(겨 울음악 1957)은 훨씬 도가 심하다. 이는 한 명에서부터 이십 명의 피아니스트에 의해서까지 연주될 수 있다. 총 20페이지로 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떤 순서로 연주되든지 혹은 생략되든지 상관이 없다. 템포도 완전히 자유롭고 음자리표도 일정한 한계내에서 변동이 가능하며, 몇 개의 음들은 배음으로 연주하거나 아니면 그냥은 표기된음정이 너무 높아 닿을 수 없기 때문에 그를 위해 미리 장치를 해 놓는다.

Winter Music이 출판된 이후 수십 년 동안 케이지 악보의 많은 것들이 단지 그림-선, 원, 점-으로만 되어 있었고, 그것들에서 연주를 도출시켜 낼 수 있었다. 일련의 Variations(변주곡 1958~1966)같은 곡들이 비록 피아니스트들에 의해 연주되게 되어 있지만, ‘몇 명의 연주자에 의해 어떤 방법으로 소리를 내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히 지시해 놓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이 시기는 케이지가 의도적인 작곡을 극도로 부정하는 쪽으로 몰고갔다.
1960년대 말경에 케이지는 갑자기 보다 전통적인 작법으로 되돌아갔다. 새 시기에 나타난 중요한 피아노곡이 24개의 Etudes australes(남 방의 연습곡 1975)이다. 각 곡이 두 페이지 길이로 된 이 곡들은 각 손이 높은음과 낮은음자리표를 동시에 가지고 있음으로써 케이지가 발명에 대한 호기심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음을 시사하기는 해도, 어쨌든 기존의 높은음자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목은 음들이 남쪽 하늘 상에 있는 성좌들의 도표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사실에서 나왔다.

연주자의 입장에서 보면 몇몇 케이지의 작품들은 아주 쉽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많은 경우 모든 음들과 바른 리듬을 익히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게다가 피아노를 장치하는 일은 인내와 기술, 주의와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Sonatas and Interludes전곡은 전과 후에 악기를 장치하는데 수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한 번 피아노가 특별한 곡을 위해 장치되었으면 다른 곡은 모든 장치를 제거하기 전까지는 그피아노에서 연주될 수 없다. (그 때 조차도 피아노가 다시 조율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연주자가 한 리사이틀 프로그램에 몇 개의 장치된 피아노 곡을 연주할 시에는 적어도 피아노 두 대는 준비해야만 한다. 게다가 장치에 들어가기 전에 상주하는 피아노 조율사나 기술자의 허락과 도움을 부탁하는 것이 좋다.

종종 우리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사람들이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수가 있다. 우리가 영향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 영향 주는 것들을 더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뷸레즈는 케이지가 처음에는 참으로 놀랍다고 생각해서 서로 토론도 하고 가장 관시거리가 되는 것들에 대해서 그에게 글을 쓰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케이지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으며 실제로 케이지가 했던 것과 똑같은 일들 몇 가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는 케이지가 “별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그를 맹렬하게 배척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스톡하우젠은 케이지를 1954년에 다름슈타트로 데려오는데 도움을 주었고 당시의 모든 기록에 의하면 그 때 가졌던 강의 중에 스톡하우젠이 말한 내용이 상당히 흥미로웠다고 한다. 케이지가 그에게, 혹은 다른 유럽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그가 손을 내저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의심스럽게 여겨진다.

케이지가 나름의 특이한 공헌을 하지 않았다면 현대의 음악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케이지 자신이 언급한 대로, “만일 내 작품이 받아들여진다면 나는 그렇지 않은 곳으로 움직여야만 한다.”라는 말을 기억하면서도, 사람들은 각각의 곡에 따라 그에 따른 가치를 둘 것이다. 그의 작품 중 일부는 넋을 앗아갈 정도로 황홀하고, 어떤 것은 무미건조하다. 장치된 피아노를 위한 곡에는 매혹적인 순수함이 있는 반면, 또 다른 곡에서는 명상적인 성격이 강해서 메시앙을(메시앙의 곡보다 세속적이긴 해도)연상시킬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곡들에는 너무나 조용하여 단지 침묵만이 큰 소리로 남아 있다고 표현할 수 있는 승려적인 고요함이 흐른다.



우연성의 음악 [ 불확정성 음악 ]


우연성의 음악은 작곡이나 연주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기회나 예기치 않은 것을 내포하는 상당한 자유를 준다. 작곡가는 사용할 음과 그 음을 사용하는 방법을 미리 정해 놓지 않고 마치 주사위를 던져서 결정하는 것과 같은 방법을 쓴다. 연주자는 자신이 연주할 음과 음악의 부분 그리고 연주 순서 같은 몇 개의 대안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음 높이나 음의 길이도 선택이 가능하여, 선택한 음을 즉흥적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어떤 작품에서는 전혀 음이 나타나 있지 않고, 단지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도표, 그림, 단순한 아이디어와 같은 상징적 부호를 모아 놓고 있다.

1951년 뉴욕의 한 음악회에서는 <상상적 풍경 4번>(Imaginary Landscape no.4)이라는 작품이 연주되었다.
통상적인 악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음원(sound source)이라고는 라디오 수십 대 뿐이었다. ‘공연’은 실시간(real time)으로 방송되던 라디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향이었다. 이듬해 <4’33’’>이라는 작품의 연주회는 더욱 악명 높다. 피아니스트가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통상 <침묵>(Silence·1961년 그가 직접 쓴 서적의 제목이기도 하다)이라고 불리지만, 음악이라고 할 만한 게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주위의 ‘배경음’이었다. 청중들의 불평소리도 포함된 것이다.

그는 무대에 올라 정확하게 4분 33초 동안 침묵을 지키다 퇴장했던 것이다.
그는 위의 세 가지 요소들을 배제한 후 환경에서 생기는 우연한 소리만을 지속의 요소로 받아들여 작곡이라고 우겼던 것이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 - 연주 데이비드 튜도르




 그림 1]  존케이지의 “4분 33초 악보”


로마 숫자가 악장을 가리키고, TACET 는 "silent(침묵)" 라는 뜻의 음악용어이다.
밑의 글은 존 케이지가 직접 적은 지시 사항인데,  세 악장의 길이를 33 초, 2분 40초, 1분 20 초로 하라는 뜻이다.  '4분 33초'의 악보는 연주자로 하여금 앉아서 소리를 내지 말고 3악장을 연주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NOTE:
The title of this work is the total length in minutes and seconds of its performance.

At Woodstock, N.Y., August 29, 1952,

the title was 4'33" and the three parts were 33", 2'40",
and 1'20". It was performed by David Tudor,
pianist, who indicated the beginnings of parts by closing,
the endings by opening, the keyboard lid. However,
the work may be performed by (any) instrumentalist or
combination of instrumentalists and last any length of time.

FOR IRWIN KREMEN      JOHN CAGE

무대에 나가 인사를 하고 피아노 앞에 앉아 4분33초 동안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인사하고 퇴장한다. (관현악 편곡도 있다 ; 여담이지만 이 곡을 직접 동영상으로 감상을 했는데 , 1악장이 끝난 뒤 지휘자가 수건으로 땀을 닦는 순간 청중들의 폭소가 터져나오는 장면에 웃었던 기억이 난다. )  청중은 가만히 앉아서 다른 데서 종이를 만지는 소리라든가 바깥에서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청중들의 기침 소리나 소곤거림이 이 작품의 구성요소가 되는 것이다.

초연 당시 케이지의 설명을 빌리자면 제1악장 사이에는 음악이 흐르기를 기다리고 있는 긴장이 느껴지고 홀 밖에 서있는 나무들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청중들에게는 들렸을 것이다. 그리고 제2악장에서는 지붕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났으며 제3악장에서는 당황한 청중이 떠드는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는 청중과 연주가라는 관계가 없어지고, 모두 같이 회장의 음향을 듣는다라는 행위로 환원되어 버리게 된다. 거기다 덧붙여 청중 자신들이 내는 소리가 그대로 작품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청중을 방관자의 입장이 아닌 그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여기에 동적 주체가 되게 한다. 이것으로 환경이나 인간은 끊임없이 동적인 상태로 변화하며 움직여 간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당시의 환경을 개인의 작품의 대상으로 구성하고 가두어버리면 그것은 이미 환경이 아니고 청중과의 생생한 관계가 상실된다고 말하였다. 이렇게 개개의 음이 일상생활이나 환경 속과 같이 살아있는 자연의 상태에 잡아두려면 음악을 프로세스, 물리적 현상 행위로 하여 순간 순간의 영주의 사건으로 환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가 1950년대 초부터 시도한 불확정성이라든가 찬스 오퍼레이션 ( 우연에 의한 조작 ) 이라는 음악의 방법은 이러한 사상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연주 현장에서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자연스런 소리들이 결국 이 작품을 구성하면서 이른바 우연성의 음악(chance music)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주 요작품으로는 《 Imaginary Landscape No.4 》(1951) 《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서트 》(1954∼1958) 《 Variations I 》(1958) 등이 있으며, 또 도안악보의 창안 등 독창성 넘치는 활동도 하였다.


용어 해설
Prepared Piano: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살펴보면, 피아노의 현 사이에 고무나 코일, 볼트, 창틀을 메우는 패킹, 플라스틱이나 참대 조각, 천 조각 등을 끼워 넣음으로써 평균율로 조율된 피아노의 음을 변질시킨다. 그러면 피아노는 음고의 면에서나 음색의 면에서 이질적 악기로 변모되어서 마치 인도네시아의 가믈란 음악을 연상시키는 음향을 낸다. 프리페어드 됨에 따라서 악음 음악(樂音音樂)의 왕자로서 다이내믹한 표현력을 갖고 있던 피아노는 악음과 조음이 섞인 섬세한 음색 타악기의 성격을 띠게 되는데, 케이지의 악보에는 R(고무), S(나사못), B(볼트), SR(나사못과 고무의 병용) 같은 것들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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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4
  1. 이한나 2010.05.09 23:52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뭐든지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자신의 철학과 주관이 뚜렷해서 거기에 의거한
    행위를 했을때 다른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수 있고 그럴 자격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저는 이런사람들을 보면 늘 그런생각이 들때가 있어요 저러한 행위를 저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했다면 이슈조차 아니면 말하거나 언론될 가치조차 가지지 못하는
    행위가 되어버릴수도 있지않을까...

    • 안진석 ironyfunny 2010.05.09 23:57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처음은 불안한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언론은 믿음이 이슈화 되었을때 자연히 따르게 됩니다.. 믿고 먼저 행해 보시는 강한 자신감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효율적 전략이라 생각됩니다.

    • 이한나 2010.05.10 00:31 신고 address edit & delete

      네! 교수님.
      '믿고 먼저 행해보는...'
      이말이 참 와닿습니다.
      저도 요즘은 무언가 행동한다는게 중요하다는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저도 강한자심감을 가지겠어요! ㅎㅎ

    • 안진석 ironyfunny 2010.05.10 00:3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화이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