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사고 : 유용한 신화

Design Thinking : A Useful Myth


돈 노먼 애플 부사장, HP 창립멤버 겸 대표를 역임한 사업가이자, 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닐슨 노먼(Nielsen Norman Group)의 공동설립자이며 현재 이 곳에서 이사 직을 맡고 있다. <일상용품의 디자인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 <감성 디자인 Emotional Design>, <복잡한 삶 Living with Complexity> 등 여러 저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하나의 위력적인 신화가 지상에서 솟아나, 경제와 학계, 정부 부처에까지 스며들고 있다. 그만큼 파급력이 크며 설득력도 높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해롭지 않다고는 해도, 그것은 거짓된 신화이다. 그 신화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디자이너들이 뭔가 신비하고 창조적인 사고 과정을 가지고 있으며,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사고에 있어 디자이너들은 그 어떤 이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러한 신화는 허튼소리에 가깝지만, 모든 신화가 그러하듯 증거가 없는 데도 그럴 듯하게 들린다. 우리가 이처럼 터무니없고 잘못된 생각을 계속 붙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자이너들의 작업이 단지 예쁜 물건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는 데 있어, 이것이 매우 쓸모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실보다는 유용성을 우선시하는 셈이다.
      

디자인 사고란 무엇일까? 그것은 당장의 이슈에서 한발 물러나 보다 넓은 시각을 갖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에 디자인 사고는 체계적 사고를 요한다. 즉 어느 문제나 더 큰 전체의 일부분이며, 해법이란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이해를 요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디자인 사고는 관찰이나 분석을 통해 해당 주제에 깊이 파고들 것을 요구한다. 더불어 그 과정에는 테스트와 빈번한 수정 작업이 수반되기도 한다. 때로는 그룹으로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면서, 여러 분야의 팀들이 다양한 형태의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을 문제 해결에 동원하기도 한다. 아마도 디자인 사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문제 기술에서 벗어나 새롭고 폭넓은 접근 태도를 취하는 것일 것이다. 이쯤 되면 디자인 사고란 말은 정말 특별해 보일 정도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이 무대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역사상에는 획기적 아이디어와 창의적 사고가 이미 존재해 왔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현재 ‘디자인 사고’라는 딱지가 붙여진 것들은 모든 분야의 창의적인 사람들이 늘 해온 것들이다. 과학과 공학, 문학과 예술, 음악과 역사, 법률과 의학 등 어느 분야에서나 획기적인 약진은, 신선한 통찰과 새로운 관점을 찾아내 이를 증식시켜 나갈 때 일어나는 법이다. 이 세상에는 일반의 통념에 도전하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지닌 사람들, 창의적인 사람들이 그리 드물지 않다. 이러한 사람들은 특별한 사고 방식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할 것도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할 일을 한다. 즉 법칙을 파괴하고,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롭게 사고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이 창의적인 존재일 수는 있겠지만, 중요한 점은 그들이 독보적인 존재는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다.        
디자인 컨설팅업체들은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데 능수능란할까? 이들은 클라이언트 기업의 사람들보다 더 위대한 창의력을 부여 받은 신비로운 존재들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도움이 될만한 장점이 하나 있다. 바로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룹 내부의 사람은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탈피하기가 어렵다. 통상적으로 그들에게 기존의 패러다임은 의문 제기의 대상이 아니라 기정 사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공기나 중력처럼 너무나 오랫동안 항상 곁에 있어 왔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겨질 뿐 결코 고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매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외부인이라면, 다른 이들은 당연시하는 것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질문을 던질 것이다. 전통이나 기존의 기업 정책이 적용되지 않는 곳, 표준화된 작업 방식에서의 탈피가 허용되는 곳, 승진이나 보너스에 문제가 없는 곳이라면 이러한 외부인의 존재가 도움이 된다.    

디자인 사고는 창의적 사고라는 오래된 좋은 표현을 대신하는 홍보 용어이며, 비단 디자이너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훌륭한 예술가, 훌륭한 엔지니어, 훌륭한 과학자들은 모두 정해진 한계를 탈피한다. 훌륭한 디자이너 역시 다르지 않다. 이처럼 잘못된 믿음인데도 디자인 사고의 신화를 영속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디자인의 역할에 대한 혼란이 여전히 존재한다. 대중의 머릿속에서 디자인이란 ‘물건을 예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기업 임원진이나 마케팅 책임자, 프로그래머, 엔지니어들 역시 여전히 이러한 시각을 갖고 있다.    

디자인계가 디자인 사고의 신화를 영속화하는 이유는 디자인 컨설팅 사업의 흥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를 고용하시라. 그러면 디자인 회사의 마법을 동원해, 낮은 생산성으로 다 죽어가는 귀사에 기적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셈이다. 강력한 비밀 무기가 있다고 주장하는 데, 디자인 사고 신화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디자인 사고’라는 용어를 끌어안는 데는 이보다 더 중요하고 더 정당한 제2의 이유가 있다. 디자인 사고라는 용어는 디자인을 독보적인 위치에 놓음으로써, 기업들이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디자인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즉 ‘사고’에 대한 강조를 통해, 디자인이 예쁜 겉모양 이상의 것이며 디자인에도 내용성과 구조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디자인의 방법론은 조직 구조나 공장의 작업 현장, 공급망 관리, 비즈니스 모델, 고객과의 쌍방향 소통 등 어느 문제에나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 사고는 디자인 회사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위력적인 홍보 용어이다. 디자인 사고는 많은 디자인 회사들이 즐겨 하는 불가사의하고 비경제적인 이상한 작업 방식에 신비한 아우라를 불어넣는다. “우린 당신들과는 다르게 일을 한답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작업이 정말 효과적이고 독보적인 이유죠.” 디자이너들의 오랜 관습이 효과적이라는 증거가 하나라도 있을까? 물론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해선 안 된다.  
그러니 ‘디자인 사고’라는 말이여, 부디 만수무강하기를. 그리하면 디자인이 형태와 스타일의 세계에서 기능과 구조의 세계로 변모하는 데 도움될 것이다. 또한 의료나 공해, 비즈니스 전략이나 기업 구조 등 거의 모든 문제에 디자이너들이 가치를 보탤 수 있다는 얘기를 널리 퍼뜨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날 때, 비로소 ‘디자인 사고’라는 용어는 제명을 다하고 사라질 수 있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는, 신화를 이용하라. 실제 믿는 것처럼 행동하라. 단, 실제로 그렇게 믿지는 말라.

originally published by core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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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현정 2011.11.20 21:2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작년에 이런 고민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름답고 예쁜 형태의 제품이 좋은것일까? vs 기능이 우선시 된 디자인이 좋은 것일까? 답은 이 둘을 합친 제품이였습니다. 그렇지만 기능이 기본이 되어야 형태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제가 우연히 알게된 공학분야의 분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기능에서 미쳐 놓치고 있던 부분들 하나 하나를 알게 되니 디자이너는 형태, 기능 어느 하나도 간과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디자인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들이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2. 이승한 2011.12.19 01:0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저도 디자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항상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면서 디자이너와 일반인 아이디어 상품을 만드는 사람의 차이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수님들이 항상 얘기 하시는 디자이너 사고란 디자이너의 기본이자 일반 제작자와의 차이를 알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흐름과 문제점에 대하여 디자이너는 항상 관심을 가지고 나름의 원인 분석과 해결을 생각해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3. 곽희철 2011.12.19 11:03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디자인 사고라는 용어 한가지로 한 회사의 다지인에 대한 생각을 바뀌 놓을수 있다는게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디자인이라는 것을 할수 있는 건데 이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가하는 디자인이라는 것은 외형적인 디자인이나 실사용에 있어 기능적인 디자인이든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보는 것을 발전시키고 그것을 현실화 시키는 것인데 그저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이것에 대해서는 나둬 버리는 것 같습니다. 디자인이라는 것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4. 서준보 2012.03.26 12:32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처음 이 글의 서론만 보고 디자인사고는 그냥 많이듣던 정형화된 문구라고 생각하였는데 글을 읽고나니 디자이너들이 가져야할 전략적 사고라고 생각이 들어집니다. 디자인사고 단지 외형만을 강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수도 있겠지만 그에 기능, 내면, 개념등 사회전반적인 세계관을 생각하고 바꾸어 나간다는 의미가 되어지는것같습니다.
    디자인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아무나 할 수 있는 디자인이지만 그렇다고 범위에 따라서 아무나 해서는 안되는 것 또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들이 앞으로 이 디자인적 사고를 계속 되뇌이며 나가야할 것같습니다.

  5. 김각림 2012.04.04 16:55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는 글 인 것 같습니다. 좋은 디자인이랑 단지 아름답고 획기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 디자인이란 사회적 문화적 방향성 등 여러가지를 반영 해 어떠한 영향력을 가지는 것인지 다시 생각 해 보았습니다.

  6. 박정민 2012.10.20 17:34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디자인에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것이 창의력과 독창성이라고 말하는 글인 것같습니다. '디자인 사고' 란 디자이너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아이템이군요. 요리사에게 없으면 안될 칼처럼말이죠. 그런데 저는 꼭 디자인한다고 해서 독창성있고 개성있고 획기적이고 충격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평범함이 오히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많을 생각을 줄수도잇고 충격을 줄 수 있기때문입니다.

  7. 류한 2012.12.13 05:31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일반 사람들도 창조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디자이너들이 일반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일을 위해 거의 창조적인 사고들을 매일 접한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보다도 사고하는것에 있어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8. 주상욱 2012.12.14 22:05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저의 없어진 창의성을 조금 더 키워주는 글인듯합니다. 조금 더 많이 사고하고 조금더 많은 생각을하여 저도 예술품하나 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엄청 어렵겠지만요..

  9. 공두형 2014.12.19 12:17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내가 유니스트 인간공학 및 디자인 랩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할 당시, 맡은 임무가 디자인 사고를 바탕으로 유니스트 학부 공대생의 디자인 교육 커리큘럼 제작이었다.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는 위 글과 같이 아주 특별한 사고방식이 아니다. 사물을 관찰할 때 당연한 것에 왜?라는 물음을 붙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디자인 사고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소한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면 결코 쉽게 지나칠 일이 아니다.
    최근 디자인 경영이라는 학문이 각광받고 있는데, 이 또한 이런 맥락일 것이라 생각한다. 디자인 사고란, 돈이들지 않는다. 단지 사고의 전환을 통한 효율증진과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고있다.
    유니스트에서 충격적이였던 것은, 공대에서 디자인 사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것에 대한 갈망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 왠지 디자이너의 영역을 침해받는 느낌이 들었지만, 순간 디자인 사고란 누구나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생각이라는 것에 이것을 침해라 치부하는 것은 아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디자이너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 만큼 전문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열린 눈으로 보고 관찰하고 꿈꾸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디자이너로 존속시켜줄 유일한 것이 아닐까..

  10. 박세현 2016.11.12 23:1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입시 준비를 할때 시야를 넓게 가지고 체계적 사고를 하고 싶지만 부담감 때문인지 잘 안되었는데, 내부인(회사의 클라이언트)과 외부인의 차이를 들어 설명을 하는 걸보니
    제가 어떤 틀에 박힌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그러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드네요.